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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력 훈련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26. 17:38

YTN 통역사의 청취력 훈련
 
곽중철 (한국 외대 통역대학원 전임 교수)
'방송통역'이라는 새 장을 열며
1995년 1월 10일, YTN 첫 전파발사를 약 50일 앞두고 대학원 후배 8명을 위성통역실 요원으로
 채용한 첫날, 나는 이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 있었다. 80년대 중반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15명의 후배 통역사를 채용해 함께 일한 경험이 있었지만 방송통역이란 전혀
 다른 분야였다. 특히 방송 뉴스란 보통 한 기사당 2분 남짓한 시간에 기자가 최대한 농축한
내용을 한꺼번에 쏟아놓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법이다. 통역요원들
모두 대학원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었지만 실제 통역경험은 많지 않았고 방송통역은 전혀
생소한 분야였다. 나도 80년대 중반 여의도의 2개 공중파 방송에서 생방송 통역을 한 경험은
 많았지만, 위성으로 들어오는 뉴스를 번역하고 영상을 편집해 목소리를 더빙한 후 방송에
내보내는 작업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위성통역실'이란 10분 남짓한 별도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는 것은 우리 방송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두 달도 남지 않은 첫  방송을 앞두고 나는 요원들에게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숙달될
 때까지는 원문에 충실할 것. 둘째, 우리말은 최대한 쉽고 짧게, 번역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할 것.
셋째, 뉴스 냄새가 나도록 언론에서 쓰는 말과 억양을 숙달할 것. 이 중 첫째 원칙이 청취능력과
직결된 것이었다. 방송 뉴스의 통역이란 시의성 때문에 신속하면서도 정확해야 하므로 확실한
청취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정확한 청취력 배양을 위해 요원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했다. 하나, 시사문제에 대한 상식이
 없거나 그 내용을 모르면 그와 관련한 뉴스는 잘 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신문이나 시사잡지를
 철저히 읽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정통하라.  둘, 숫자 통역이 틀리면 변명의 여지가 없으므로
 특히 숫자에 조심하라.  셋, 자신이 없는 내용은 임의로 번역하지 말고 꼭 데스크에 문의하라.
확실히 들려야 통역을 하지
그로부터 통역요원 8명과 정확한 리스닝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침 8시경 출근해 간밤에
근무한 요원 2명이 해놓고 간 통역물을 점검한다. 직접 모든 원문기사를 다 들어 볼 수는 없다.
이때 한 가지 요령이 있다. 통역해 놓은 우리말을 보면 맞게 한 통역인지 아닌지를  대충 알 수
있다. 우리말로도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은 거의 잘못 들은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해서 낮에
근무하는 요원들이 퇴근하는 저녁 8시까지 그들의 작품을 철저히 점검했다. 중요한 부분에
오역이 있을 때는 담당요원에게 그 부분을 영문 그대로 받아 써보라고 지시했다. 이 방법은
 모든 이들이 권장하는 가장 확실한 청취력 향상법 중 하나다.
대부분 방송통역을 처음 해보는 요원들은 초기에는 엉뚱한 실수가 잦았다. 특히 밤 11시부터
 새벽 7시까지 근무하는 야근조 2명은 졸리는 탓인지 재미있는 실수도 많았다. 그러나 나의
 불호령은 예외가 없었다. 눈물이 나도록 야단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같은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치였다. 그런 과정에서 나 자신은 어떻게 청취력을 길렀는가를 회상하곤
 했다. 1979년 통역대학원이 설립되고 1기 원생으로 입학해서 동시통역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 후, 과연 이 공부를 해낼 수 있을까 회의를 느낀 것은 청취력 때문이었다. 여기서 내
가 세운 목표는 최대한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소리내어 말하자는 것이었다. 불어를 함께
공부한 내 경우는 어려움이 더했다. 장시간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피로한 일인데
그것도 외국어를…….
청취가 괴로운 작업인 것은 사람의 귀가 정보를 흡수하는 데 가장 비효율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이 하는 말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그것을 빠짐없이 알아들으려 하거나
  통역까지 해야 하는 일이 그래서 힘이 드는 것이다. 녹음기를 갖다 놓고 돌려듣기를 계속해야
하는 것을 정말 고역이다. 그래서 녹음기와 이어폰과 친해지는 것이 청취력 향상의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80년 9월부터 83년 6월까지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파리의 통역대학원에서 유학하면서 청취력
 때문에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하면서 나름대로 일가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청취력이란
'귀가 뚫린다'는 말처럼 귀속을 뚫는 고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귀가 뻥 뚫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뚫렸다 해도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그 귀는 다시 조금씩 메워져나간다. 귀를 뚫린 상태로 유지하려면 계속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만 한다.
3년이 넘도록 방송 통역을 하면서 우리 요원들은 각자 순간순간 느끼고 배운 것이 너무 많았는데
막상 써보려고 하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라 안타까웠다. 역시 그때그때 메모를 해
놓았어야 했다. 그래도 책의 분량은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특히 여러 사람의 경험을 종합해 보니 영어 청취에서 몇 가지  공통적인
 비결이랄까 원칙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이 알아야 들린다.
영어 단어나 표현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치, 상식이 풍부해야 영어도 잘 드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많이 읽고 많이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요,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원칙이다.
자신이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어야 상대방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 귀 먹은 사람이 말을
 잘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영어공부를 할 때 정확한 발음으로 큰 소리로 많이 읽으라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받아쓰기를 열심히 해야 한다.
말이 들렸다고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한마디도 빠짐없이 그대로 받아 적어 보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귀찮은 작업이자만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
위 세 가지 방법 모두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그 괴로움을 덜려면 자신에게 맞는
 즐거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영화면 영화, 노래면 노래 등 분야를 찾아 파고들면서 영어를
깊이 있게 공부해 나가면 된다. 어찌 보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편집증이
필요하다. 귀에 들리는 문장을  한마디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문자화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청취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는 노래방에 가서 음정, 박자 하나 틀리지 않고
노래 한 곡을 완벽하게 불러보려고 노력하는  마음과도 같다. 그런 집념 없이는 영어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